겁내지 않고 내 속도대로 살면 안되겠니.

등산복을 입고 등산화를 신고 베낭을 메고 나갔다. 오랜만에 아침부터 반짝반짝 빛나는 하늘에 이런 날 산에 가지 않으면 또는 못하면 영원히 가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하고 말이다. 자리에 앉아 설명을 듣고 문제를 풀고 하는 동안 파랗던 하늘이 눈이 찡그려지는 회색빛 하늘로 변해가고 있었다. 모두 마치고 062-131에 전화를 걸어 보니 대기가 불안정해서 천둥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올 확률이 40%란다. 40%라면.. 그리 높은 것 같지는 않지만.. 천둥번개는 무서운데. 어두컴컴한 산에서 비맞는 것도 싫고 여기저기 우르릉꽝꽝 하는 것도 싫은데.. 어두운 산길에 무서워 징징대는 모습을 상상하며, 낙뢰로 인한 등산객 사고에 관한 뉴스를 기억해 내며 어떻게 해야 할까 망설였더랬다. 김밥집에 들어가서 김밥을 두 줄이나 먹었다. 산에 가면 원래 김밥 먹는 거잖아.. 시간도 시간이니까 우선 김밥은 먹어야겠다 하면서. 김밥이 너무너무 먹고 싶어서이기도 했고 행사기간이라 싸다는 그냥 김밥이 굉장히 맛이 없어서 맛있는 김밥을 먹고 싶어서 하나를 더 시켜버렸거든. 대체나 비싼 참치김밥은 대체나 막 싸서 그런 건지 맛이 좋더라고.. 비싼 참치김밥을 남길 수도 없고 달랑 서너 개 남은 거 싸달라고 하기도 옹색하여 꼭꼭 씹어 다 먹고 밖으로 나왔다. 아직도 여기저기에 구름이 많긴 하지만 하늘이 아까처럼 그렇게 위협적이지는 않은 것 같아서 한 번 가 보기로 했다. 그래 등산차림을 하고 나왔으면 증심사 입구라도 밟아 봐야지.


그런 날씨에도 불구하고 증심사 입구는 생각보다 붐볐다. 도착하니 어느새 하늘을 좀 희망적으로 보였던가?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붐비는 인구에 산 속에서 동떨어져서 무서워 할 일은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던 거지. 증심사 입구에서는 여기 저기 공사가 진행이 되고 있었고 그런 공사를 마쳤을 법한 새로 보는 건물들도 꽤 들어서 있었다. 전에 라디오에서 토끼등 가는 탐방로가 막혔다고 하더니 그런 공사 때문인가 싶더라. 그런데 막상 막혀있다는 탐방로를 보니 아 이걸 어떻게 해야 되나 하는 생각에 막막해졌다. 증심교에서 토끼등 구간 막혔고, 중머리재에서 증심교 막혔고, 새인봉삼거리에서 증심교까지 막혔고..토끼등까지 갔다가 기본으로 중머리재로 가 주고 마음 동하면 새인봉쪽으로 가다가 가고 싶으면 가고 힘들면 내려오거나 할 수 없고,  새인봉쪽으로 올라가서 중머리재나 토끼등 갔다가 봐서 내려오는 거도 안되겠고.. 새인봉쪽으로 올라가서 중머리재 찍고 토끼등 찍고 바람재까지 가서 내려오거나 바람재 너릿재를 지나 무등산산장 근처에서 버스를 타는 것, 또는 중머리재에서 꺾어 장불재를 넘어서 화순으로 넘어가는 것으로 추정되는 미지의 길을 내려가거나 하는 것만이 가능해 보였다. 모르겠어. 오랜만에 산에 왔는데, 오후에 왔는데, 갈 수 있는 길은 저렇게 빙 두른 길 뿐인 거야? 게다가 바람재는 어디야? .. 모르겠어... 근데 저기에 보니 새인봉 올라가는 길이 되게 멋있어 진 거 있지. 나무 계단 잘 해 놓은 거야. 그래 저거나 한 번 밟아 봐야지 하고 우선 오르기 시작했어.


흙을 밟고 산길을 밟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음이 편해졌다. 우중충한 하늘 아래 산에 오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있다. 눅눅한 땅 눅눅한 풀숲 그 안에 사는 동물에서 시작한 그런 두려움이 있다. 오기 전에 머릿속에서 그려내는 산은 항상 실제보다 더 어둡고 눅눅하고 한적하다. 그런 걸 깨고 갈 때마다 항상 내 그런 두려움이 바보같았다고, 산길은 내 머릿속 왜곡된 상보다 어둡지 않고, 그 시간에 산에 오는 사람은 나 말고도 많고, 그리하여 어느 길 중간에 외따로 떨어져 있을 일은 얼마 없고, 내가 두려워하는 동물은 (없진 않지만) 걔네들도 내 발걸음을 무서워한다고 마음의 벽을 겨우 빼부수고 갈 때마다 아 그랬었지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해대도 다시 맨날 잊어 버리고 말더라고. 그리고 산 속의 난 생각보다 주위를 그렇게 많이 둘러 보지 않아.그저 발끝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길 뿐이지.


모든 일에 그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가고 싶어 가고 싶어 가고 싶어 하면서도 막상 지금의 상황과는 별 상관이 없을지도 모르는 일로 걱정을 하다가 못 하곤 많다. 걷는 중에 천둥번개소나기가 오면 어떡하지, 나 말고 아무도 없으면 어떡하지, 너무 어두우면 어떡하지. 정 그렇게 위험한 상황이라면 진짜로 출입을 막겠지, 내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나만큼 또는 나보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괜한 걱정을 하니, 막상 가 보면 그리 어둡고 축축하지 않고 가끔 구름사이로 반짝반짝하는 햇빛에 덕분에 말라있는 길에 얼마나 감사할 수 있게 되는데... 힘들 것을 걱정해서 가고 싶지 않아 하는 게 아니잖아. 처음부터 재잘재잘 수다를 떨며 함께 할 수 있는 친구가 아니라도 막상 무슨 일이 닥치면 손을 뻗어 줄 수 있을만한 사람들이 없지 않다는 것을 언제가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어. 늘 겁을 내다가 혼자서 허덕이지 말고 그러면 좋겠어.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오랜만에 산에 오르면서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물도 다 떨어지고 말야. 아우 진짜 죽겠네- 했다고. 근데 힘들어도 좋더라고.   

by 알랄롱 | 2009/07/27 14:49 | 알랄롱.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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